▲ 전영상 건국대학교 교수
   지금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라는 최순실과 측근들의 ‘국정농단’ 사실을 접한 국민들은 세월호 이후 다시금 경악과 허탈 그리고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있다. 심지어 ‘자신도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는 어떤 이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자신을 비롯한 지지자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허탈과 분노에 휩싸인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11월 12일 광화문에 100만명이 모인데 이어 지난주 전국적으로 95만여명의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 대구에서 조차 30년 만에 최대 인파가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고,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을 비롯한 중.고등학생들마저도 ‘학사농단’에 분노와 미래를 위한 염원을 토해내고 있다.
  정국이 날로 격화되고 국가의 혼란과 손실 그리고 국민의 고통은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는 데 이를 생각하는 지도자는 적어 보인다. 야당의 대표들도 거리에서 함께 촛불을 들고 있고, 박사모 등 보수단체들은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그리고 검찰은 최순실과 비서관 2명을 기소하면서 이들의 범죄행위와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상당부분 공모관계에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말 대국민담화에서 최순실 등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자신에 대한 수사 허용과 함께, 조기대선을 먼저 제시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책임의 크기를 감당하려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정국의 혼란을 막고 검찰수사에 준비할 여유를 가졌어야 한다.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추천총리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우선, 거국중립내각을 통한 국정의 안정을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 이들의 바람대로 당장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도,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이 헌법의 규정이고, 그러한 상황에서는 혼란스런 정국이 잘 수습되거나 다음 대선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검찰 수사나 특검 과정에서 탄핵이나 하야의 국면이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박근혜 대통령도 추미애 대표도 다음을 위한 수를 두지 않았고, 그래서 정국을 주도하여 국정을 안정시키고 다음을 준비할 순간적 기회를 잃었다. 이제는 모두 100만 촛불이라는 시대사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과거에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꺼번에 돌지 않았고, 민주주의는 한꺼번에 꽃피우지 않았다. 1960년 어린 학생들의 희생 속에 얻은 4.19 혁명의 결과는 어른들의 혼란 속에 기회를 잃었고, 1980년 민주화의 봄이 왔을 때도 정치인들의 경쟁 속에서 역사는 다시 반복되었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의 결과도 바로 피어나지 못했다.
  역사의 발전과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의 의식과 실천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우리가 할 일은 미래를 위한 정확한 방향의 설정과 지금 단계에서의 진정한 역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자신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30%를 넘나들던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5% 이내로 하락하였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 중 상당수가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권리를 위임한 유권자 중 많은 수가 그 위임을 철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실질적인 통치능력보다는 헌법에 의해 그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야권의 주장대로 당장 탄핵이 추진되더라도 6개월 정도가 필요하고, 개헌론이 실행되더라도 4개월 이상은 걸린다. 그리고 대선과정까지 거쳐야 한다. 결국 다음 정권의 탄생은 내년 상반기는 지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존 대통령의 임기를 겨우 몇 개월 정도 줄이는 것이 된다.
  야권도 대통령의 임기 몇 개월을 줄이기 위해 탄핵을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 몇 개월에 연연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100만개의 촛불과 적극 참여하지 않은 많은 국민들이 그 몇 개월의 임기 때문에 혼란의 지속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되는 경제적 고통과 미국 대선의 결과 그리고 끝나지 않은 북한 핵문제 등 국내외적 상황에 더하여 장기적 혼란이 초래할 국가적 손실과 국민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 더구나 현재의 국회 파행 상황을 보면 정상적인 예산안의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공무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공공기관은 신규투자가 암담한 상황이라고 하는데, 내년 예산마저 졸속처리 되거나 통과되지 않고 준예산을 사용하게 된다면, 정부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운영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것은 분명하다.
  지금 타오르는100만개의 촛불이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만을 외치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속에 이번만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진정한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루어야겠다는 열정이 솟구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자리를 고수하기 시작했고, 여당의 비박계와 잠룡들은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했으며, 야당 잠룡 6명은 당을 초월해 '비상시국 정치회의'를 연다고 한다. 이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영달이나 집단의 이익보다 대한민국의 역사 발전과 진정한 민주주의가 얼마나 더 큰 가치인지 묻고 싶다.
  이 순간 우리에게는 나라를 위해 다음을 고민하고,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더욱 아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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