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동 편집국장

  언론이 군대를 민간인의 눈으로 함부로 재단하면, 거짓말이 된다. 안락한 의자에서 몽상한 시각으로 군대를 판단하려고 하면, 그것은 구조적으로 허구적이 될 수 있다. 일단 군대를 군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다음에 외부에서 충고해야 하는 것이다. 

 마이클 왈쩌는 종교단체, 교육단체, 기업집단, 군대집단 등에 각각 다른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다원주의적 정의론'을 주장했다. 군대를 향해 성직자나 몽상가의 윤리나 논리를 들이대는 것의 한계나 모순을 우리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민주팔이들이 모든 사회적 영역들에 민주나 평화의 규준을 마구잡이로 들이대고 있다. '평화군대'까지. 그 결과 적을 향해서도 '평화'를 주절대는 비정상적 군중들이 군부에까지 침투했다. 
 적을 적으로 보지 못하고, 군대를 군대로 보지 못하는 비정상적 군중선동꾼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허무는 것은 물론이고, 군대까지 망치고 있다.
 군대의 인권은 사회의 인권과 달라야 한다. 군대의 부분적 인권침해 사건을 보고, 군대 자체를 반인권적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분적 진실을 전반적 구조악으로 보는 논리의 비약이고 사실의 왜곡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평화와 인권의 이름으로 주적을 없애고 고참에게 복종하는 병영문화를 약화시킨 결과, 오히려 군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악질적 학대가 증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면, 이번에 '기수열외'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기합을 너무 엄격하게 통제하니까, 동료(특히 부하)에 대한 적대감은 왕따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군대가 권위주의적 명령체계를 생명으로 섬기는 특수집단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낭만적인 인권개념을 군대에 들이대면, 결국은 기수열외와 같은 변태적 인권침해가 발생될 수 있다. 총기난사와 같은 극단적 인권침해를 몰고 오는 것이다.  
 군대의 특수성에 좀 더 고민하는 한국언론이 되어야 한다. 군대는 적을 죽이는 전쟁수행집단이다. 이익의 극대화를 노리는 기업이나 지식의 취득을 목표로 하는 학교나 고상한 도덕을 향하는 종교집단과 너무도 다른 적을 죽이는 집단이 군대다.
 적을 죽이는 기술이 군대의 최고 미덕이다. 욕망을 절제하고 권위에 복종하면서 그런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다 보니까, 동료(특히 부하)에 대한 비인간적인 억압이나 학대가 군대에 쉽게 발생될 수 있다. 
 구타나 왕따가 군대에서 최대한 척결되어야 하지만, 일정한 기합이나 통제는 피할 수 없는 군대의 병영문화에 속한다. 상관의 권위와 부하의 복종은 군대가 작동되는 제1계율이기 때문이다. 
 군대의 가혹행위부도덕한 총기난사자를 미화하는 낭만적 인권개념이나 파편적 군대진단은 올바른 병영문화 구축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군대의 특수한 윤리를 파괴하는 환상적 정치선동은 결국 군인을 죽인다.   
 오늘날 한국언론의 집중적인 해병대 마녀사냥은 우직한 군대에 대한 교활한 언론의 이지메(왕따)나 마녀사냥(학대)로 볼 수 있다. 
 소위 민주화가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언론의 횡포는 한국사회에 최고의 사회적 폭력으로 등장했다. 국익이나 상식도 없이 마치 독재자처럼 휘둘러대는 언론의 몽상한'인권'이나 '평화'는 한국사회에 기만과 폭력이 난무하게 만드는 핵심적 변수가 되고 있다.
 언론이 군대보다 억울한 희생자들을 더 양산한다. 자기변명에 약한 군대와 경찰에 대한 한국언론의 무자비한 마녀사냥은 마치 빨치산이 점령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포로가 된 군인이나 경찰에 대한 인민재판처럼 보인다. 해병대를 폭력집단으로 무자비하게 매도하는 한국언론의 선동문화가 국군의 병영문화보다 더 폭력적이다. 이것이 인권과 민주와 평화를 과잉 강조하는 한국언론의 위선과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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