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종호 주필

   회광반조(回光返照), 해가 떨어지기 직전, 일시적으로 하늘이 밝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촛불로 말하면 초가 다 탈때 일시적으로 더 밝아지는 현상이다. 병으로 말하면 결핵환자들이 일시적으로 더 밝히는 현상이다.

  보수에게 지난 5년은 ‘회광반조’와 같은 것이었을까? 여론이 이 정도로 일방적이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집권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여전히 70%를 오르내리고, 민주당 지지율은 50%를 넘나든다.
  범 보수로 분류되는 경쟁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은 합해도 20% 남짓이고, 홍준표 등 보수 정치지도자들은 웃음거리로나 존재감을 드러낸다. 보수는 우리 사회에서 더 나쁠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보수이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는 말하길, “전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쟁은 여론 전쟁, 여론 간의 전쟁이다.”라 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과 구체제의 몰락 그리고 이어진 극도의 혼란이 궁극적으로는 여론 전쟁, 사상(思想) 전쟁에서 보수주의가 패배한 결과라고 보았다.
  패배를 넘어 새로운 혁명적 사상에 대항할 수 있는 체계적 보수 이념 자체가 부재(不在)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그런 인식의 토대 위에 만들어진 것이 근대적 보수주의 사상이다.
  보수의 가치는 지도자 개인의 도덕성과 자기희생이라는 덕목이 진보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전체 공동체를 위해 재산, 목숨, 가족 등을 내놓을 수 있는 이가 바람직한 보수 지도자일 텐데 지금은 보수는 친일 , 불법 재산 상속, 비도덕적, 자기가족, 이기주의 부정부패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이 대목에 있어 절망적이다. 자신과 한줌도 안 되는 피붙이, 측근들의 이권에만 골몰하는 자가 보수의 지도자라면 그런 보수는 망할 수밖에 없고 망해야 한다.
  더 망해야 정신 차린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완전히 망해야 제대로 살 수 있다? 옳은 지적인가? 너무 성급한 지적질이다.
  한국에서 정치 세력으로서의 보수, 사상으로서의 보수주의는 철저하게 실패하고 또 패배했다.
  보수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나 보수와 진보는 힘을 합쳐 나라를 유지한다.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포용성과 탈 정파성, 절제와 자기희생이라는 덕목은 사회 공동체 유지를 위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보편적 가치다.
  역설적이게도 보수가 망할수록 그것은 희소해지고 도리어 더 중요해진다. 그 누구든지 그 가치를 지향하고 또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 보수다.
  정치는 한편으로 큰 세력을 가라치는 능력과 더불어 이쪽이 다수가 되게끔 어느 선에서 가라 칠지 직감적으로 아는 것과 일단 그룹 내에 들어온 사람들을 결집해내는, 다시 말해 균열과 결집이라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능력 갖고 있다. 똑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과거 DJ·노무현의 경우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사자와 여우의 모습을 함께 갖고 있다.
  보수층을 달래는 행동에서 여우처럼 보이는데, 어떤 지점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신념의 사자 같은 면이 있다.
  야권과의 관계설정에서도 지지율 70%를 유지하는 선에서 섣부르게 협치를 하는 것이 지지층에게 실망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나 안희정 지사가 대연정을 이야기할 때 지지층이 경악하고 집토끼를 떠나게 하는 그 시점을 문 대통령은 아는 것인지 자유한국당에 양보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은 절대로 타협을 안하고 있다.
  ‘보수몰락 현상에 대해 이탈리아 마르크시스트인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언급한 경구에서 “위기란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듯이 한국 보수의 위기가 그 상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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