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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람시론(解纜時論) / 이 '친목카르텔'을 깨야 대한민국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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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30  12: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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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람 강대업(자유기고가, 강원평화나눔센터 대표)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가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시국에 코로나 치료제 개발에 획기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4,000여 명의 완치자 혈장을 공여하겠다고 밝힌 ‘신천지 예수교회’ 관련 기사가 포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기회에 지난 2월 코로나 방역에 대한 홍보와 인식 부족으로 인해 많은 확진 피해를 입은 ‘신천지 예수교회’ 집단감염을 둘러싼 각계의 반응들을 되짚어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언론학에서 뉴스의 취사선택적 편집이나 은폐를 ‘게이트키핑’ 이론이라 일컫는다. 이에 따르면 언론의 사실 왜곡은 극과 극을 오갈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맹견에게 쫓기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파키스탄 청년에 관한 기사 제목이 ‘이슬람 과격 단체 일원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남자, 무고한 미국의 개를 잔인하게 죽이다’로 본말이 전도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동안 다수의 목소리만 크게 들려서 그랬던가 신천지 교회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집합예배를 금하고 스스로 시설폐쇄를 하는 등 노력했던 것들도 언론이 만들어 가는 선택적 이슈에 묻혀 가려졌고 혹독한 여론의 뭇매를 맞아온 것이 사실이다.
 많은 가짜 뉴스가 난무했고 특히 그동안 신천지 교세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숨죽이고 있던 한국 기독교계가 이 일로 신천지 교단 공격에 앞장을 섰던 점도 특이하다. 여기에 이례적으로 검찰과 국세청이 나서고 정치권의 일부 대권주자들도 가세해 자극적인 여론 몰이에 숟가락 얹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최근 대구시가 신천지 측에 대규모 구상권 청구소송을 낸 것도 그 맥락을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와 지자체가 우선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집단 감염병의 방역 책임을 다른 쪽에 전가하는 한편 중앙 정부가 일찍이 대구시에 내려 보낸 긴급재난지원금 늑장 지급 문제와 생업을 미루고 자원했던 의료진들에 대한 미흡한 처우 등에 대해 들끓고 있는 국민의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크게 명암이 갈린 것이 몇 가지 있다면 그 중 하나가 4.15 총선이다.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무렵 야당 쪽에서는 정부의 방역 실책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이런 확산 추세라면 총선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선진국들의 부실한 대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모범적인 방역사례로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면에서 부각된 것이 또한 여당의 압승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언론과 안티 세력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신천지 교단이 방역에 협조적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아울러 무엇보다 국민들의 헌신적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이 나올 수 있었을까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가가 모든 감염병 치료를 부담했지만 한 단체에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가 완치된 4,000 명 넘는 이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의 혈장을 공여하겠다고 나선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00조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떠나 어쩌면 수 천 년 동안 전염병에 대처해 온 인류 역사에 중요한 한 획을 긋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내 편이 아니라고 선의를 무조건 곡해하고 비난하기보다는 그 한 분 한 분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 그리고 신천지 교단의 대승적 결단에 격려를 보낼 수 있어야겠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존 볼턴'의 회고록을 보아도 주위에 둘러선 열강들은 우리가 잘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힘을 길러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젠 알아야 한다. 이처럼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산적한 문제들을 원칙에 입각해 하나씩 풀어가는 문재인 정부가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한 민족인 우리가 나라 안에서 만큼은 국익을 위해서도 상대를 서로 인정하고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점들이 많다. 서로 진영을 가르고 노선과 색깔 그리고 종교를 차별해 가며 상대가 잘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심지어 같은 여권 내에서도 계파를 나누어 국익을 깎아 내리는 편협한 일들을 해 왔던 것이다.
 세계 모든 국가가 진퇴성쇠의 기로에 선 이때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은 코로나 사태가 인류에게 주는 경고와 교훈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웃이 망해 가는데 나만 살겠다고 욕심을 부린다 해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웃 나라에서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가면 그들을 어떻게든 도와야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상생과 협력의 도(道)인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많은 이들이 진실을 오해하고 왜곡된 방향으로 몰아간다 하더라도 사리를 분별해 옳은 일은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의요 또한 진정한 용기가 아니겠는가?
 지금의 정부가 하는 일들이 국민 모두를 만족시킨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약자의 편에 서서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인권을 존중하며 나아가 자주적 외교로써 당당히 국격을 높이는 일들을 해 오고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지금의 언론과 정치 환경에서도 애쓴 열매가 있기를 국민은 성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익을 위해 또한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위해 지금까지 남다른 일을 해 온 이만희 총회장의 그간 행보를 정부와 국민 모두 지켜보았기에 모른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만 왜곡된 여론과 반대 세력의 눈을 의식해 애써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기에 우리 사회에 충심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물론 같은 혈연 학연 지연 노선과 이념 종교 등이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의지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도를 넘어 이권에만 매몰된 이 '친목카르텔'을 앞세울 때는 공의공도의 정의로운 사회와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 대중들 앞에 서 있는 모든 분들이 먼저 이 일에 모범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 했다. 곧 덕은 외롭지 않아 이웃이 있으니 눈가림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 누구든 선악간 행한 일에 반드시 올바른 평가가 따를 것으로 믿는다. 그것이 곧 역사의 심판이기도 한 것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를 비롯한 인류 역사에 많은 예지자들이 다시 한번 타오르는 동방의 등불로 우리를 예찬했듯이 암울한 이 난세에 우리 대한민국이 진정 하나되어 만국을 소성(蘇醒)할 수 있는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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