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신문/이효진 기자]  아직도 퇴근 무렵이 되면 불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이 형 뭐 혀…”하는 낯익은 음성이 들려올 것만 같다.

4집 '노을치마' 출간 축하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故 임연규 시인.
4집 '노을치마' 출간 축하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故 임연규 시인.

  ‘죽은 사람이 생전에 써서 남긴 시들을 모아 엮은 책’이 유고시집의 사전적 의미이다. 이미 윤동주, 이육사, 박경리, 이오덕 시인들의 유고시집이 사후에 널리 읽히고 있으며, 무엇보다 요절한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맨 마지막 페이지에 배치한 ‘엄마 걱정’을 읽노라면 생전 임 시인의 시풍을 만나 보는 듯하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 하략 -

  한때 동가식서가숙하던 자신을 스스로 찬밥 신세라 하던 천상시인 임연규! 그를 생각하며 발간사를 쓰자니 다시 가슴이 먹먹해 온다.

  어찌 몇 줄 글로 신산한 세상길, 밤 뻐꾸기처럼 울다 간 그의 시상과 행적을 담아낼 수 있으랴. 갑작스레 불치의 병이 깊어진 지난해 봄날, 피골이 상접했어도 아주 정신이 혼미하기 전 “시집을 한 권 내야 할 텐데…” 하고 중얼거린 걸 그저 곁말로 들었는데 급기야 불귀의 객이 될 줄을….

  평소 임 시인의 자녀들과 가족을 잘 알고 지낸 터라 장례를 치르며 고인의 소원대로 유고시집 발간을 지원하겠다는 약속과, 허물없이 함께했던 지인 몇 분, 그리고 청주까지 조문을 다녀간 조길형 충주시장님의 “시인이 좋은 시 남기고 가면 잘 살고 가는 거지요.”하며 관심을 가져 주시고, 충주중원문화재단의 후원에 힘입어 시집 발간이 가능해졌다.

  별도의 추진위원회 구성없이 이런 취지가 주변에 전해지자, 채들 고미숙 불교신문 편집인이 한 권 분량의 미발표 詩를 정리하여 보내왔고, 문학단체 회원들과 충북시협 회원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졌던 수십 편의 詩들과 수필이 모아졌다.

  임 시인의 마지막 다섯 번째 시집 제목이 ‘아니오신듯다녀가소서’이다. 어느 사찰 느티나무 앞 담장에 흘림체로 서각한 유려한 경구를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 생을 예견이라도 하듯 제목을 그리 정한 것은 아닐는지 마음이 아리다.

  임 시인은 1995년 여름 ‘사람과 詩’ 詩전문동인지(회장 최종진) 결성과 동시 뜻을 같이한 문우들과 28년의 세월을 동고동락하였다.

  지금쯤 평소 그가 소원하던 나무보살 되어 하늘을 바라보며 절창 장사익의 찔레꽃을 부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유고시집 발간을 위하여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한 권의 책이 바람에 흔들려도 꽃을 피웠던 곤고한 삶 속의 임 시인 시 세계를 재조명해 보는 추억 속 흑백사진이자 명함이 되길 기원해 본다.

                                                                    사람과 詩 동인회장  이 정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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