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순]  한국의 역사는 민족세력과 반민족세력, 독립군과 친일세력, 통일세력과 반통일 분단 세력,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 주류 세력인 운동권 정치세력을 가장 폄하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능력 없는 '쭉정이' 세력이라는 것이다. 능력도 없이 욕심은 많고 자리와 돈만 탐하는 세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상적 측면에서는 강한데 경제나 경제 운용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내용도 실력도 없이 자기들이 민주화 운동하던 시절만 팔아먹고 연명하기에 기생충으로도 불린다.

 숙주인 군부세력 등은 벌써 죽었거나 없다. 운동권 세력은 정치사상이나 투쟁에는 강하지만 경제에는 취약하다.

 운동권 출신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요새 두 가지로 시달린다. 같은 운동권에서 이재명의 잠재적 대항마로 보기에 문재인 정부 책임론으로 공천을 주지 않으려는 친명세력에 시달리고, “1인당 국민소득이 IMF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됐다”며 윤 정부의 ‘경제 파탄’을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가 경제학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경제학자 출신의 윤희숙 전 의원이 “희한한 일. 작년 숫자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되레 마음이 짠해진다”고 반박하면서 말만 앞서고 경제 현실에 무지한 ‘운동권 경제학’을 정치판 화두로 떠올렸다.

 운동권 경제학의 대부는 박현채 교수였다. 운동권의 벽돌깨기나 책 읽기에 학과 선배들이 세미나, MT 때 읽어오라고 찍어준 필독서에는 리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 경제학자 박현채의 ‘민중과 경제’가 있었다.

 주류 경제학자인 조순 등은 뒤에 등장한다. 박현채는 ‘민족 경제론’을 주장했다. 한국 경제를 ‘식민지 종속형 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궁극적 지향점을 ‘미국 경제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자립 경제’라 보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주류 경제학을 가르친 사람은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였다.

 그는 당시 청와대와 여당의 386 운동권 출신에 일침을 놓았다. 대학 시절 어깨 너머로 알고 습득한 ‘운동권 경제학’의 좁은 시야로 온갖 정책에 관여하다 보니 경제 부총리로서 황당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박현채(1934~1995) 교수는 빨치산 경험, 인혁당 사건 연루 등 이력으로 재야에서만 활동하다 1980년대 후반에 뒤늦게 조선대 교수로 채용됐지만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주류인 서강학파에 이어 뒤늦게 등장한 노무현·문재인 정부 ‘학현학파’ 출신들이 노무현 정부에 중용됐다. 분배 경제학을 중시한 고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학현연구실’과 인연 있는 경제학자들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문재인 정부의 홍장표 경제수석, 강신욱 통계청장 등이 학현학파다.

 변형윤 교수는 1980년 시국 선언으로 해직 교수가 됐을 때, 제자이자 서울대 경제학과 후배인 박현채씨가 “소주 한잔 하십시다. 등산하러 가십시다” 하고 불러내 위로해 준 덕분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고 둘 사이의 남다른 인연을 얘기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반일(反日) 죽창가’는 분배 중시, 반미·반일의 민족 경제론 같은 이른바 ‘운동권 경제학’의 문제의식에 뿌리를 둔다. 먹고사는 경제를 모르는 진보나 보수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얼간이들이다. 

 운동권 인사들은 1999년 제정된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라 명예를 회복하고 경제적 보상을 받았다. 민주화운동을 스펙 삼아 권력도 얻었다. 운동권 기생충 세력이 국민의 짐이 되고 있다.

저작권자 © 중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