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상 건국대학교행정학과 교수
해마다 연말연시면 정부와 기관, 단체, 기업 등에서 공무원과 직원들의 승진과 전보 등 많은 인사이동이 있다. 인사에 대해 사람들은 “인사가 만사”라거나 “일은 사람과 돈이 하는 것”이라며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인사는 “잘 해도 절반, 못 해도 절반”이라고도 한다. 인사결과가 대상자 자신에게 유리하면 “잘했다”하고, 불리하면 “잘못한 인사”라고 불평하기 때문이다. 선출직 인사권자와의 관계에 대해 ‘선거에서의 충성’과 ‘일로써 충성’을 비교하기도 하고, 지역연고, 학연, 혈연 등 정실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떠돌기도 한다. 이러한 인사의 다양한 측면 가운데 ‘선거’와 ‘인사’의 관계가 주요 관심사항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재선을 위한 전진배치”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현직에의 충성”이라며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렇듯 인사권자와 공무원의 관계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현실적으로도 공무원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사권자와 공무원의 관계와 권한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주인-대리인론이 있다. 일정 공간에서 함께 삶을 영위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동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일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공무를 맡을 자’를 선출하고 이들에게 공동의 일을 맡긴다. 이렇게 선출된 공직자는 자신이 혼자서 그 공무를 다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도와 일할 사람들을 선정한다. 즉, 권한의 본래 주인인 국민들이 자신들의 일을 대신 해 줄 선출직 공직자를 뽑고, 이 선출직 공직자가 다시 자신과 함께 일할 공무원을 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민법상의 본인-대리인-복대리인의 관계를 원용하여 설명하면, 권리의 주인인 국민(본인)-선출직 공직자(대리인)-일반 공무원(복대리인)의 관계가 된다. 그렇다면 본인과 복대리인의 관계에서 복대리인은 본인의 대리인인가? 대리인의 대리인인가? 이 질문에 대해 민법에서도 본인의 대리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반 공무원은 선출직 공직자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제1조 제2항에 “대한민국이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되어 있다. 모든 권한과 권리 그리고 그것을 집행하는 힘은 국민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선출직 공직자와 그에 의해 선정된 공무원은 모두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모든 공적 행위를 국민을 위해서만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공무원을 공복(公僕, public servant)이라 하고, 공무원헌장에서도 “국민에게 봉사”를 우선하고 있다. 이렇듯 선출직 공직자는 물론 일반 공무원들은 인사권자가 아닌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런데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전문성과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실질적 영향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인사권과 예산권의 원소유자가 바로 시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시민보다 현실적 영향력이 큰 대리인에게 충성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리인이 본래 주인을 위한 일보다 자신의 재선이나 측근의 이익을 위한 일에 더 몰두하기도 하고, 일반 공무원이 선거기간에 유력한 후보에게 잘 보여 후일을 기대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공무원은 윤흥길의 소설 ‘완장’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천부적 권력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주민은 자신의 권력을 빌려주고 그것을 집행할 돈까지 마련하여 주고는 오히려 자신이 일을 시킨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거나 구박을 받는 경우도 있다. 선출직의 당선이 반복되고, 관료조직이 비대해지거나 폐쇄성이 높아질수록 이러한 망각과 권위주의적 현상은 심화된다.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는 진정한 지방자치의 구현을 위해서 탈피해야할 우선적 과제이다. 그리고 인사에 대한 공정성을 시비하기 전에 자신이 진정한 권력의 주인인 시민에게 얼마나 충성을 하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주인에 대한 진정한 봉사를 위해 공무원 인사에 시민의 평가를 포함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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