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상 건국대학교 교수
  2004년 8월 2500여명의 충주시민이 참여한 상경집회 지부상소를 정점으로 혁신도시의 충북 배제가 철회되었고 충주시민들은 기업도시와 혁신도시의 충주유치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이미 12년의 세월이 흐른 탓인지 한동안 충주시청 3층에 전시되었던 지부상소의 상징인 상소문과 도끼마저도 행방이 묘연하고, 사람들도 그때의 열정은 물론 기억조차 희미해진지 오래인 것 같다.
  당시 “혁신도시는 어음이고 기업도시는 현금”이라며 기업도시가 혁신도시보다 중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지금은 “음성의 혁신도시가 더 잘 된다”며 혁신도시를 먼저 유치했어야 한다거나 심지어 “괜히 혁신도시 충북배제를 철회해서 음성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충주가 더 위축된다”며 혁신도시 충북배제철회를 오히려 원망하는 이도 있다.
  2005년 7월 충주에 기업도시가 유치된 바로 그날, 광장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시장실에서는 혁신도시와 기업도시의 유치운동에 앞장섰던 핵심인사들 중 일부가 혁신도시를 충주, 음성, 괴산이 공동으로 유치하여 음성군 소이면을 중심으로 3개 시군의 접경지역에 배치하고 지방자치법 제159조에 규정된 지방자치단체조합을 구성하여 운영할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우선, 기업도시와 혁신도시의 시너지 효과를 통한 충주, 음성, 괴산의 상생발전이 충북중북부권의 발전을 견인하고 나아가 중부내륙권 발전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과 미래에 진행될 수 있는 도청 이전이나 행정구역광역화에 대비하기 위해 이웃도시와의 협력과 상생의 노력이 사전에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도시를 유치한 상황에서 혁신도시까지 단독으로 유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충주는 혁신도시 충북배제 철회의 공로가 가장 큰 충주로 혁신도시가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한동안 단독 유치를 추진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서둘러 3개 시.군 공동유치 전략을 채택하고 음성, 괴산과의 협의를 시도하였으나 괴산은 적극적이었던 반면, 음성은 미온적이었다. 이미 진천군과 공동유치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충주는 보다 빠른 상황판단과 전략적 결정 그리고 과감한 행동이 있었어야 했다. 
  어쨌든 혁신도시는 음성과 진천의 접경지역에 건설되었고, 우리는 이들의 발전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도시가 못내 아쉬운 이유는 기업도시와의 시너지 효과를 상실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중부내륙권의 발전의 촉매로 작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전에 보다 전략적으로 임했었다면 그래서 혁신도시를 유치했다면 기업도시와 혁신도시의 시너지 효과는 지역발전은 물론 충북 중.북부권과 중부내륙권의 발전을 촉진하는 큰 역할을 했었을 것이다.
  이제 몇 년 후면 중부내륙선철도가 개통되고 충주는 두 개의 고속도로와 두 개의 철도를 갖는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주요 교통결절지가 된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사통팔달의 교통시설이 갖추어진다고 해도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 상승효과를 낼 수 없다면 지역발전의 주요 토대로 작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달천사거리와 같이 충주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위치에 동서남북을 잇는 고속도로와 동서남북을 잇는 철도를 연계하는 통합교통시설인 복합환승센터를 설치하여야 하고, 이것이 지역의 주요 자원인 두 개의 대학과 종합스포츠타운과 함께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최대한 분출토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충주는 과거 중원경과 충주목의 영광을 되찾고 충북 중.북부권은 물론 중부내륙권의 상생발전도 견인할 수 있다. 때문에 지금은 어느 때 보다도 빠른 판단과 전략적 결정과 과감한 행동이 필요한 때이고 이를 위해 충주시민의 단결된 의지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절호의 기회를 또다시 놓친다면 그 때는 또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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