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상 건국대학교 교수
   유난히 화창한 봄 햇살을 흐리게 하는 미세먼지와 황사가 안타까운 날, 여러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과 정책을 알리는 수많은 플래카드들 속에서 “후보와 정책, 공약을 바로 알고 투표하는 아름다운 선거”라고 쓰인 문구가 눈에 띤다. 
  정책중심의 공정선거를 치르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단한 노력을 느끼면서 부정선거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졌던 우리의 지난 선거 역사와 비교해 보면 많이 깨끗해진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헛된 공약이나 인기영합 정책을 표방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막걸리, 고무신, 돈봉투로 상징되는 지난 세기 선거판은 ‘먹어야 찍는다’는 선거 브로커들의 ‘조직선거’ 타령에 많은 정치인들이 가산탕진으로 정치인생의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이러한 잘못된 선거의 역사는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을 겪으면서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금품살포와 관권동원은 물론이고, “상대후보의 선거운동원인 척하면서 돈봉투를 건네는데 봉투에는 달랑 천 원짜리 한 장만 넣는다”거나 “자기는 양담배를 피우며 상대에게는 가장 값싼 담배였던 새마을을 건네주면서 상대후보를 꼭 찍어 달라”고 하는 등 고도의 이미지 훼손이나 음해 전략까지도 구사하였다고 한다. 특히 고질적인 영호남의 갈등도 이러한 흑색선전이 낳은 잘못된 결과라고 하니 네거티브 전략과 부정선거의 폐해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말, 민주화와 지방화시대가 열리고 공직선거법이 시행되면서 많은 규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선거행태가 크게 변화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일각에서는 사전선거의 투표함 보관이나 해외동포 투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고, 공약(公約)을 빌 공자 공약(空約)이라며 그 실천 가능성과 질적 수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내세워진 공약 가운데도 ‘불효자방지법,’ ‘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치매 팔찌 보급,’ ‘전통시장 빈 점포의 청년몰 조성’ 등과 같이 이색적인 공약도 있지만 ‘그린벨트 전면해제’와 같이 무책임한 공약도 있다. 
  이러한 헛된 공약의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이 전개되고 당선자의 공약실천에 대해 평가하고 있지만 모든 정치인들의 공약과 정책을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일부 후보자들은 매니페스토 운동을 염두에 두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미 집행계획을 가지고 있거나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업을 위주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지역의 현안사업이나 지역발전을 위한 비전의 제시가 구체성, 검증가능성, 달성가능성, 타당성, 기한명시, 공약의 지속성, 자치력 강화, 지역성, 후속조치 등 매니페스토 운동의 평가기준을 모두 충족시키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의 발전에 꼭 필요한 정책이라면 공약의 검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약의 성공 여부를 몇몇 시민단체들의 기준과 판단에 의해서만 결정할 수는 없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 국민들의 의견과 판단이 더 중요하다. 
  비전의 제시는커녕 지역의 현실을 망각한 채 일단 주장하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공약도 문제이지만, 공약에 대한 평가가 두려워 어려운 일은 피하고, 하기 쉬운 일 또는 이미 계획된 일만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도 곤란하다.
  진정한 지역의 대표라면,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내고 지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속에서 장기적인 계획과 정책을 과감히 제시하고 추진해야 한다. 공약과 실천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고 다음 선거에서 판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봄 햇살과 같은 지역의 미래를 흐리게 하는 헛된 공약, 안일한 정책, 흑색선전을 걷어내고 지역의 백년대계 밝히기 위해 주민의 염원을 담은 과감한 정책의 제시와 올바른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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