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상 건국대학교 교수

   어떤 이들은 한국인을 두고 모래알에 비유하기도 한다. 개개인은 모두 뛰어나지만 단결하지 못하고 다툼과 질시가 심하기 때문에 부족한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내는 힘보다 부족하거나 이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기 일쑤라는 조롱이다.

  사실 우리사회 내에서도 우수한 집단을 두고 모래알이라고 비아냥거림이 적지 않다. 지연. 학연.혈연 등 집단중심 농경사회의 전통적 특성과 함께 전체주의 시대를 겪어온 우리사회에 서구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개인주의와 소집단 또는 소지역 이기주의와 같은 개별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나 사회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전체주의나 국수주의도 문제이지만 지나친 개별화 현상도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전통사회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구조가 남아있는 조직에 개인주의나 소집단 이기주의가 만연되거나 정부조직의 구성원들이 소집단이기주의에 빠지면 조직 자체는 물론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나친 전체주의나 개별화 현상에서 벗어나 개인과 집단이 상호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동원이 아닌 구성원 스스로의 참여와 협력이고 이를 통해 조직과 사회를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모래알이 뭉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진흙덩이보다 모래가 결합된 콘크리트가 더 단단한 것처럼 어쩌면 모래알을 단결시키면 천하무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모래를 결합시키는 시멘트와 같은 접합제이다. 모래알을 단결시키는 접합제는 바로 서로에 대한 믿음 즉 사회적 신뢰이다.
  R. D. Putnam이라는 학자는 이탈리아의  20여개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정책의 성과와 지역사회의 특성을 연구한 결과, 사회적 협력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사회적 규범과 네트워크 그리고 신뢰를 제시하였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뢰라고 하였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신뢰는 조직을 결합시키고 활성화하여 그 힘을 배가시킨다. 지역에서 평생을 봉사활동에 바친 어떤 분이 “봉사활동도 먹을거리가 있고 놀거리가 있어야 잘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자기희생을 기본으로 하는 봉사단체도 보람이나 사회적 인정감 등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에게 득이 되고 함께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야 그 조직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모임이나 단체는 물론 기업과 정부의 조직마저도 투명하게 열려있는 시스템과 순환되는 인적 구조를 바탕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충분할 때 구성원들 스스로의 참여와 협력이 나타나고, 결국엔 조직의 활동과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신뢰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형성된다. 지속적인 만남과 편안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감이 형성될 때 상호 신뢰가 싹트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지역의 일부 공직자들은 ‘회원들의 청탁’을 꺼려하여 지역사회 활동보다는 자신들만의 동문회나 동호회를 선호하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 간의 신뢰는 그 구성원들의 다양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와 경험 속에서 신뢰가 쌓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책적 이해와 순응이 이루어지고 주민참여의 동기가 발생할 수 있다.
  지역사회와 지방자치단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외면한다면 민원해결은 물론 시정협력과 주민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역 내 수많은 문화.예술.사회단체와 각종 동호회.동문회 등이 있다. 이들 조직이 상식적 규범과 투명하게 열린 시스템을 갖추고 다양한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참여와 활동을 통해 신뢰가 쌓일 때 지역사회의 사회적 자본이 축적될 것이고, 이는 시민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지방정부의 정책 성공을 위해서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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