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상 건국대학교 교수

   몇 년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극찬하며 미국 교육의 롤 모델로(role model) 삼자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고등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학원건물에서 투신한 사건이 있었다. 최고의 선진국 중 하나인 미국에서도 본받고자 하는 교육을 받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왜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자꾸 일어나는가?

  한국은 부모와 자녀간 동일체 의식이 매우 높은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고 교육열이 세계적으로 높은 탓인지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와 희생이 가히 절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주로 학업성적에 집중되고 있다.
  관료중심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만 하면 자신의 출세는 물론 집안을 일으키고 잘 하면 자손의 부귀영화까지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거급제를 위해 일생을 두고 사서삼경을 달달달 외우는 선비들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도 이러한 문화가 남아있는 탓인지 공부를 잘 해야만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는 물론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할 수 있다는 묵시적인 분위기 속에 일류대학과 사법시험 등에 매달리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열이 지나친 교육 경쟁을 낳았다. 사교육시장이 40조를 넘었고,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가 필수(?)라는 수준에 이르렀다. 부모들은 파출부를 하면서까지 과외비를 충당한다거나 유학비용 때문에 홀로 단칸방에 살며 라면을 밥 먹듯 먹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최근에 학생의 수학성적이 부모의 소득수준에 비례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방정식은 ‘=’(equal)로 푸는데 수학 성적은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학교의 성적이나 순위를 학생들의 보편적인 학업성취나 인격형성, 진로지도보다는 일류대학의 합격자 수로 평가하려는 사회적 풍토 속에 공교육의 의미는 날로 퇴색하고 있다.
  몇 년 전 필자가 자녀의 학업성적과 행복감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아동.청소년패널조사 자료를 통계 분석해 본 결과, 공부를 잘하는 자녀를 둔 부모의 행복감이 더 높기는 하지만 자녀의 성적 변화는 부모의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자녀의 행복감이 부모의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학생은 자기 성적의 향상에 따라 행복감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자녀의 성적이 좀 더 올라가거나 내려간다고 해서 부모가 더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고, 학생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오르고 행복감도 더 커질 때 부모들도 더 행복해 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억지로 성적 향상을 강요하기 보다는 자녀가 원하는 공부,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공부는 무조건 외우거나 일방적인 주입식 공부 외에도 즐거운 대화나 토론 또는 체험을 통해 익히는 공부도 많다. 또한 입시나 학교성적을 위한 공부 외에도 세상에서 잘 살기위해 배워야 할 많은 공부가 있다.
  최근 부장판사나 고검장 출신들의 불미스런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고, 공부를 잘 했을 것 같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공부를 잘하는 것이 곧 훌륭한 인품의 도야나 사회적 기여로 이어지는 것은 같지는 않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거나 공부를 잘 하면 모든 것을 다 잘한다는 인식 또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만 베풀어지는 특혜나 관용은 오히려 그 학생뿐만 아니라 소외된 학생들을 비롯한 사회구성원 모두를 굴절시킬 수 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해서 대도시에서 출세했다는 이들보다 고향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교와 지역사회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지역의 주인이며, 앞으로 국가와 지역을 위해 일할 인재들을 낳고 기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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