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상 건국대학교 교수
   지난 8월 23일 오전, 어느 자그마한 승리가 있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다리가 불편한 한 사람이 해발 1708m의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올랐던 것이다. 물론 패럴림픽을 보면 더욱 대단한 도전과 성공을 볼 수 있고, 충주지역 장애우들의 에베레스트 도전도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지원체계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승리이고 보람이다.
  몇 차례의 시도와 망설임 끝에 정상에 올라선 그는 이 도전을 위해 이번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아파트 계단을 몇 차례씩 오르내리는 훈련을 계속 했다고 한다. 남들처럼 자신도 대청봉에 한번 올라보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동행을 약속했던 필자도 그의 실패에 대한 우려와 만약의 사태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았다. 또한 함께 산에 올랐던 친구들도 몇 번씩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그의 의지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매번 쉬다말고 앞서서 출발하는 성심을 보며 감동이 넘쳐 오히려 부끄러움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산행 도중 등산로 여기저기에 10여cm 크기의 철근이 솟아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등산로의 나무계단을 고정시켰던 철근이 나무의 마모에 따라 돌출되고 만 것이다. 여러 해 등산을 하면서 몇 번 나무뿌리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던 경험이 있는 필자는 함께했던 동료의 안전뿐만 아니라 그 길을 지나갈 많은 사람들의 안전이 우려되었다. 
  때문에 하산 직후 국립공원관리공단 현지 사무소에 이러한 내용을 전달하였으나 자신들도 알고 있다는 직원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뿐, 언제 어떻게 개선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듯 했다.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발생했고 담당 기관에서 그 사실을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즉각 조치를 취해 위험을 예방할 수 없는 것일까? 예산문제인가 인력문제인가 아니면 시스템이나 안전 불감증의 문제인가?
  얼마 전 전국의 공원이나 등산로에 설치된 야외 운동기구들의 위험에 대한 한국소비자원의 조사결과가 보도되었다. 운동기구가 낭떠러지 근처나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에 설치되어 있고, 주춧돌이나 나무뿌리 등 장애물이 있어, 운동하던 사람이 넘어지거나 떨어져 다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곳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장이나 파손된 운동기구가 제대로 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곳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함부로 설치되고 방치된 시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야외 운동기구에 대한 검사의무와 안전.시설 기준이 없고 관리지침도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그냥 방치되어 있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명의 위험 앞에서도 ‘규정타령,’ ‘예산타령’하는 관료문화의 일면을 엿보는 것 같았다. 관료사회에 ‘폭탄 돌리기’란 말이 있다. 이는 위험요소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면, 이를 해결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의 임기동안 무사히 넘어가기만을 고대하다가 후임자에게 떠넘기는 관행이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위험에 대한 관리는 굳이 기준과 지침이 있어야만 집행할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선 집행 후 보고와 절차를 갖출 수 있어야 하고,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면 지역사회에 협력을 요청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폭탄 돌리기’ 속에 희생당하는 이들은 결국 국민이며 특히 노약자들이다. 많은 이들의 도전을 더욱 어렵게 하는 장애요인은 어쩌면 자연적인 것보다 인공적인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회와 자연 속에 잠재된 위험요소에 대한 즉각적인 해결이 이루어질 때 보다 많은 이들의 소박한 성공과 보람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사회적 건강과 활력이 축적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건강과 활력이 국가와 지역의 안녕과 발전의 원동력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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