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상 건국대학교 교수
   앞으로 꼭 한 달 후면 나석주 의사가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지 9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26년 12월 28일 당시 의열단원이였던 나석주 의사는 일제침략과 수탈의 상징이었던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하셨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가난한 농민들의 토지를 수탈하여 총경작지의 1/3이나 빼앗고, 29만9천명의 농민들이 고향을 잃고 멀고 먼 북간도로 떠나게 하였으며, 식산은행은 조선 농촌 수탈과 중일전쟁 자금을 공급한 일제의 대표적인 경제수탈기구였다. 그런데 최근 충주지역에 당시의 식산은행 건물을 20여억원의 세금을 들여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다.
  충주는 과거부터 항일정신이 뿌리 깊은 고장이다. 우선,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을 비롯한 8천여 군민이 장렬하게 전사하신 곳이다. 당시 8천여 군민의 상당수는 충주와 인근 지역의 선량한 백성들이었고, 이들이 몰살당한 뒤 살아남은 백성들은 또 얼마나 더 많은 죽임과 수탈을 당했는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때문에 충주는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충청감영의 자리조차 충남 공주에 한동안 내어주어야 했고, 일제의 강점이후 결국 도청 소재지를 빼앗겨 개발의 중심에서 소외된 채 지금까지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렇듯 처절한 항일의 역사를 겪어와서인지, 조선 말기에는 충주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의병활동이 전국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였고, 3.1운동도 충북에서는 제일 먼저 일어났으며, 지금까지 8천 고혼의 한과 충성을 기리고 있다. 또한 최근 충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충북 최초의 3.1운동을 기리는 행사와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려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듯 뿌리 깊은 항일정신을 이어나가는 지역에서 일본 제국주의 수탈의 상징을 재현하는 것은 지역 정서에 맞지 않는 것 같다. 특히 구 식산은행건물이 우리가 복원해야할 예성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과거 경복궁 근정전 앞을 가로막고 광화문을 아우르는 모양새로 지어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1995년 광복절 50주년을 기념하여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x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폭파.해체시켜 버렸다.
  당시에도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축학적 의미나 예술성 등에 대한 의견이 있어 이전 복원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쌓여왔던 일본 관광객들의 일제시대에 대한 향수어린 행동과 그에 대한 반일 감정이 폭파 해체방식을 선택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한다.
  현재 충주시의 재정자립도는 18.6%에 불과하고, 문화관련 예산의 확보와 배분은 언제나 여유롭지 않다. 때문인지 보물 제96호인 미륵대원지 석조여래입상 석실 보수공사는 12년의 노력 끝에 겨우 시작되었으며, 청룡사지의 국보 제197호 보각국사정혜원융탑과 2개의 보물은 지붕조차 없이 노천에 방치된 채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풍화와 도난의 위험을 견디고 있다.
  그런데도 20여억원이나 되는 복원비용을 일제의 잔재이자 침략의 상징이며 이미 그 훼손 정도가 심해 거의 신축이나 다름없는 건물의 리모델링에 투자할 여유가 있는 지 궁금하다. 더욱이 인근 원주나 군산 등에 유사한 형태의 구 식산은행건물이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만일 예산의 여유가 있다면, 예성복원비용에 보태는 것이 낫다. 하루빨리 예성을 복원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거나 드라마촬영장으로 제공하여 일본인들이 ‘욘사마’라 부르는 배용준과 같은 한류배우들이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 관광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더 높을 것이다. 우리의 예성이 언젠가는 경복궁이나 수원 화성과 같이 제대로 복원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 어떤 이는 일제의 잔재를 복원해 놓고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계기로 삼자고도 한다. “우리가 약하고 부족해서 침략과 수탈을 당했으니 앞으로 강해져서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말자”는 결의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부족하다는 열등감과 자학에서 비롯된 의지이고,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해 영원한 자신들의 하수인인 2등 국민으로 만들려 했던 일제 식민지 정책과 유사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해지기위한 자발적 격려와 노력이지 자기부정에서 비롯된 오기가 아니다. 진정 강한 자의 의지는 열등감이나 오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신감과 긍지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긍정적 강화를 통해 솟아오르는 것이다.
  최근 국정혼란의 상황을 두고 ‘국민 화병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세월호사건 때는 ‘전 국민 패닉’ 상황 속에서 많은 시민들이 우울증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시민의 혈세를 들여 일제식민지 수탈의 상징을 버젓이 복원해 놓고 후손들까지 상시적 열등감과 자학 그리고 스트레스에 영속적으로 노출되게 할 수는 없다.
  차라리 오는 12월 28일, 나석주 선생의 의거 90주년을 기념하여 ‘나석주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조선총독부 건물과 같은 방식으로 철거하는 모습을 기록하여 전하는 것이 현 세대의 자긍심 제고는 물론, 8천 고혼의 넋을 위로하고 후세를 위한 진정한 반면교사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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